남기고 싶은 이야기
○ 김재일
1949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하다가 40대 초반에 문화 및 환경 운동을 시작했다. 1990년에는 보리방송모니터회를 창립해 불교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환경단체 ‘두레생태기행’을 이끌며 사찰생태연구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두레생태기행 회장, 사찰생태연구소 대표, (사)보리방송모니터회 회장, 불교환경연대 공동대표,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① 출가시절 경험, 보현행의 밑거름
올해로 불교시민운동에 첫 걸음을 내디딘 지가 20년이 되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그만두고 KBS 방송작가로 있다가 우연한 계기가 있어서 작가생활을 청산하고 1990년 보리방송모니터회를 창립해 불교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40대 초반에 시작하여 여태껏 불교계에서 보냈으니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짧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에 앞서 출가 인연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973년, 그때 나이 스물하고 다섯, 그 무렵 경기도 용인 시골학교에서 교사로 있었다. 그 해 봄, 안성 칠장사로 소풍을 갔다가 마침 객스님에게서 ‘나고 죽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게 평지풍파요 청천벽력이었다. 결국, 그 해 가을 아침, 짐을 정리해서 하숙집을 나섰다.
주지스님은 나의 출가의중을 듣고는 고개를 저었다. ‘출가자는 오랜 숙연이 있어야 한다. 교직도 좋은 보살행이니 그만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면 다시는 출가 인연이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 고시생처럼 밥값을 내고 절에 눌러 앉았다. 두 달 후, 다행히 행자가 되었는데 그 시절 참으로 보고 배운 바 많았다.
당시 칠장사에는 감나무가 많았다. 감을 딸 때면 꼭대기에 몇 개씩은 항상 남겨두었다. 궁금해 하는 나에게 주지스님이 나직히 말했다.
“이건 겨울에 새들 먹으라고 남겨두는 거예요. 까치밥 몰라요?”
당시 고시생들의 방에 군불을 때주는 것도 내 일과였다. 어느 날, 썩은 나무를 해 와서 군불을 때는데, 한 스님이 그걸 보고는 나무랐다.
“나무 속에 벌레들이 안 보이나? 산채로 아궁이 속에 집어넣었으니 화탕지옥이 따로 없구만!”
‘보현행원’ 내 마음의 좌표로 세워둬
20여년 시민운동가 삶의 큰 힘으로
출가시절의 겪고 보고 들은 소중한 경험들은 시민운동으로써 보현행을 하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
행자생활 끝에 금하당 광덕스님의 상좌가 되었다. 당시 불광회를 통한 도심포교와 월간 <불광>을 통한 문서포교는 사제(師弟) 모두에게 큰 불사였다. 종지가 불립문자에 있다고 해도 언어를 빌린 문서포교는 무엇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훗날, 불교의 언론주권을 위해 보리방송모니터회를 설립하고 미디어 포교를 위해 나름대로 활동하게 된 것도 그때 얻은 의지의 결과이다.
그 무렵 구리 보현사에는 장병들과 대학생 불자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와 은사스님의 법문을 듣곤 했다. 잡다한 일을 하느라 대각사에서는 스님의 법문을 들을 기회가 없었는데, 보현사 시절은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몇 해 후 자신이 마장이 되어 제풀에 넘어져 환속하고 말았다. 훌륭한 은사 스님과의 인연은 길지 못했으나, 불광 사상의 요체인 보현행원은 늘 내 마음 속의 좌표로 세워두었다. 보현행원은 수행자의 길인 동시에 인간이 걸어가야 할 보편적인 길이다. 내 삶의 후반부를 채운 20년 불교시민운동도 보현행원의 사회적 구현에 다름 아니다.
② 시청자 운동은 곧 호법활동
솔숲을 떠난 송충이가 다시 어딜 가겠는가. 하산 후 다시 교직생활을 시작하다가 6년 만에 국어교사 노릇을 접고 펜을 잡았다. 출가 전에 단편소설이 당선이 된 적이 있었고, 영화진흥공사의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된 적도 있어서 그 알량한 이력을 믿고 방송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방송작가는 신춘문예 같은 입문과정이 없어서 당시 KBS는 방송연수원에 작가과정을 개설하여 거기서 배출된 인재들을 뽑아 썼다. 마침 1988년 작가과정을 거쳐서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게 되었고, 다음해에는 언론학도들을 모아 ‘방송문화조사연구클럽’을 만들어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 여름, 월간 <대중불교>가 주최한 1박2일 대중결사가 남양주 봉선사에서 있었다. 자기소개 시간에 방송작가라고 했더니, 쉬는 시간에 몇몇 보살님들이 찾아와서 항의를 했다. “방송에서 불교를 그딴 식으로 다루어서 어쩌자는 거요?” 보살들의 많은 불만을 듣고 돌아와서 프로그램을 모니터링을 해보니 불교에 대한 왜곡과 편파가 도를 넘어 있었다. 미륵불이 미신의 대명사로 그려지고, 목사가 불교문화를 리포터하고, 사리가 담석으로 소개되고, 인생 패배자가 출가를 해서 스님이 되고, 드라마 속의 불자는 가난뱅이에다 무식쟁이로 나오고….
드라마 작가에서 감시자로 전환
불교 왜곡.편파 바로잡기 앞장
결국 분발심이 생겨서 방송의 역기능으로부터 삼보 지키기에 나섰다. 그러나 방송을 상대로 싸우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일이요,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교계신문에다 방송을 모니터하자고 단신을 띄웠더니 마침 몇 사람이 모였다. 대원불교회관에서 몇 차례 모임을 가진 후, 1990년 3월24일 목동청소년회관에서 보리방송모니터회 창립식을 가졌다. 당시 방생선원 성덕스님과 김응철 거사(현 중앙승가대 교수)의 도움이 컸다. 성덕스님은 재정이 열악한 모니터회에 후원금을 주셨고, 불교대학에 시청자교육 과정을 개설해주셨다.
같은 해 5월에 불교방송이 개국되어 초창기 모니터 작업을 맡았다. 모임의 활성화를 위해 불교방송 옆 건물에 작은 사무실을 얻었는데, 6개월 만에 괘씸죄에 걸려 불교방송으로부터 퇴짜를 맞고 나니 모니터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사무실에 혼자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둘 수 없다는 마음이 생겨서 작가 본업을 팽개치고 <사부대중을 위한 방송이해>를 저술, 대중교육과 모니터 양성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외부적으로는 여러 시청자단체들과 연대를 강화하고, 강릉 거사님들이 중심이 된 강원도지부도 설립했다.
그러나 불교사회에서 시민운동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청자 운동은 종교가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 가운데 가장 효용성 높은 운동이다. 안으로는 불국토 구현을 위한 호법운동이요, 밖으로는 시대의 문제를 치유하는 사회운동이다.
돈을 들여 외부강사를 초빙하여 교육을 하면 불자들은 상대적으로 적고, 그나마 젊은이들이 아니라 동원(?)된 노보살들만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게 다반사였다. 그런가하면 불교에 대한 왜곡편파에 비중을 많이 두다보니 다른 단체들로부터 ‘보리는 불교권익만 챙긴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게다가 모임의 재정은 항상 밑바닥이었다. 회원은 있어도 회비를 내는 회원이 없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회원에 가입해주고, 교육에 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당시 원고료와 출연료 등 몇 푼 수입을 교육추진비와 임대료 등에 붓고나면 늘 빈손이었다. 내가 ‘돈도 안 되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 동안 아내는 돈벌이를 위해 문래동 철공소와 구로동 인형공장을 전전해야 했다.
③ TV 속 종교편향 저지에 온힘
1992년 여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경북 영주 관음사 주지 도기스님이었다. 안동 MBC TV와 라디오가 매주 일요일 오전 30분간 <행복으로의 초대> 프로그램을 내보내는데, 매주 목사가 나와서 설교를 하는데, 은근히 불교를 비방할 때도 있다는 제보였다.
알아본 결과, 서울과 대구 MBC를 제외한 전국의 17개 MBC가 재정확보를 위해 순복음교회가 자체 제작한 ‘행복으로의 초대’라는 선교용 비디오를 13년간 정규 편성하여 선교방송을 해온 것이었다. 문제의 프로그램은 방송법 제5조를 비롯해 방송심의규정 제5, 6, 10, 21, 83, 110조를 위배한 불법방송이었다.
이에 대해 보리방송모니터회 등 21개 불교단체가 ‘공정방송을 위한 불교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공보처, 방송위원회, MBC 등 관계기관 항의방문과 거리 시위 등을 통해 해당 프로그램의 위법성을 지적하고 즉각 중단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순복음교회 측의 반대운동과 개신교 측의 교묘한 훼방과 압력 등으로 문제해결이 지지부진했다. 특히 지방 17개 MBC가 각기 분리된 독립재단이라 본사와의 담판은 효력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10월말 관음사 도기스님과 승가대 학생회장 동출스님, 조계사 청년회 지정수 회장, 그리고 필자가 봉고차에 살림살이를 싣고 안동 MBC를 시작으로 각 지방 MBC를 돌며 각개전투를 벌였다. 힘든 곡절을 거쳐 그 해 12월15일 문제의 방송을 모두 중단시켰다. 이것은 MBC가 시청자단체에게 굴복하여 프로그램을 중단한, 한국방송사 초유의 일이었다.
불법 선교방송 편성한 MBC에 일침
의류회사 광고 속 ‘主日’용어 퇴출도
MBC 불법선교방송 사건 1년 만에 방송광고에서 다시 문제가 터졌다. 개신교 장로가 경영하는 주식회사 신원이 자사의 의류제품을 광고하면서 화면에 ‘주일은 쉽니다’라는 자막을 내보낸 것이다. 특정종교용어인 ‘주일(主日)’을 방송용어로 쓰는 것은 사회에 혼란과 분열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방송법에도 저촉됨을 방송위원회에 항의했다. 방송위원회 심의가 ‘방송불가’로 판정이 났지만, 신원은 오히려 개신교 인사들을 동원하여 관계요로에 압력을 넣었다. 이에 보리방송모니터회는 정부, 방송사, 일간지, 신원, 시민단체, 불교단체 등에 ‘주일’ 광고의 불법성을 지적하면서 제품 불매운동을 벌였다. 신원은 고등법원에서 ‘주일’ 사용 불가 판정을 받자, 다시 대법원에 항고를 했으나 결국 패하고 말았다. 그 후 신원은 ‘일요일은 지킵니다’라는 문구로 바꾸었다.
우리가 이 두 거사를 해결하는 동안 종단에서 단 한 통의 격려전화도 없었던 사실이 지금도 섭섭하게 회원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그후에도 보리방송모니터회는 방송의 불교에 대한 왜곡이나 편파에 사사건건 대응하면서 창립 10주년을 맞아 자비로 "TV에 비친 불교 10년"을 펴냈다. 제목 그대로 ‘10년 동안 TV에 비친 불교’의 모습을 자료화한 것이다.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조사와 분석, 프로그램 비평과 모니터, 불교문화 관련 프로그램 소개 모니터, 시청자전화 등을 실었다.
한편 ‘어린이와 청소년’ ‘불교와 전통문화’ ‘생명과 생태’를 주제로 한 모니터링과 세미나와 토론회를 계속 열었다. 이와 함께 "TV 바로보기와 인터넷 바로하기"를 펴내어 청소년을 계도하고, "전통문화 프로그램 발전을 위한 세미나"를 통해 점차 서 구대중문화에 점령되어가고 있는 방송환경에 경종을 울리고 그 대안을 제시했다. 특히 최근 3년간은 방송을 통해 저질러지는 잔인한 살생과 폭력을 모니터링해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부처님의 생명사상에 입각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④ 미디어의 불교왜곡에 적극 대응
지금은 많이 향상되었지만, 불교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왜곡과 편파는 공공연했다.
드라마 <원효대사>는 개신교 집사가 만들고, 교양다큐멘터리 <미륵> 3부작은 개신교 목사가 리포터를 맡는 등 부처님 오신 날 특집 프로그램들마저 대부분 수준과 함량이 미달이었다.
불교 프로그램의 질적인 향상을 고민하던 끝에 1992년 대한불교신문사(사장 혜총스님)와 함께 우수한 불교관련 프로그램을 선정하여 조계사 회관에서 ‘보리방송문화상’을 시상하게 되었다. 제2회부터는 신문사가 빠지면서 사단법인 불국토(이사장 정관스님)가 주최하고, 보리방송모니터회가 주관을 맡고, 안국선원(이사장 수불스님)이 재정을 맡게 되었다.
불교사회 발전과 방송문화 창달을 위해 제정된 보리방송문화상은 상의 연륜과 내용에 비해 부산의 지역 단체가 주최한다는 인식 때문인지 사회적 지명도가 낮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13회 때인 2005년에 조계종 총무원에 주최를 이관하면서 상의 이름을 ‘불교언론문화상’으로 바꾸고, 시상 분야를 확대 개편하여 불교계 종합 언론 상의 위치를 견고히 했다. 상을 이관하는 과정에서 부산의 불국토 스님들과 충분히 논의하지 않고 예의를 갖추지 못한 점은 지금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한편, 교육방송과 교통방송 프로그램을 맡아 불교의 전통문화와 정서를 이해시켜왔다. 특히, 호랑이 굴에 들어가듯 2년간 기독교방송 문화유산 답사프로그램에 매주 고정출연하여 청취자들에게 불교문화를 이해시킨 일은 종교평화 차원에서 큰 보람으로 남는다.
프로그램 향상 위해 ‘방송문화상’제정
언론운동 20년, 아쉬움만큼 보람도 커
그동안 보리방송모니터회는 정부나 지자체가 행사하는 공모사업에 단 한 차례도 참여하지 않았다. 사안에 따라 반정부운동에도 나서야 하는 시민단체가 정부의 돈을 받아서 활동을 한다는 것이 왠지 떳떳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참여정부에 들어와 방송위원회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보리방송모니터 창립 15주년을 기해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게 되었다. 시청자단체로는 사단법인 등록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당시 법장 총무원장 스님과 방송위원회 박준영 위원의 격려가 컸다.
1990년대 두 차례 종단 개혁불사에 참여하여 주로 언론감시 역할을 맡았다. 당시 방송사와 신문사는 종단개혁 과정을 왜곡, 편파, 선정, 추측 보도로 일관하여 조계종과 수행자에 대한 대국민 이미지를 훼손했다. 이를 매일 모니터링하여 해당 언론사에 항의하여 시정토록하고 개혁의 필연성 등을 홍보하였다. 개혁이 마무리된 다음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 시청자운동에 올인하였다.
2005년도부터는 조계종단과 유대관계를 갖고 본.말사주지교육 등에 나가 미디어교육 등을 맡았다. 어린이를 위한 간행도 종단의 지원으로 펴낸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위원회 구성을 제의만 해놓고 참여치 않았던 것은 선수 없이 감독만 모인 위원회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밖에 불교방송과 불교TV의 자문도 지금껏 맡고 있다.
언론운동 20년을 되돌아보면 회한도 깊다. 나의 원력과 능력이 부족하여 여러 차례 해체 위기를 맞았던 일, 빈약한 재정으로 교육을 자주 갖지 못한 일, 활동가 부족으로 모니터링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일, 몇 개월째 주무간사를 못 구해서 활동이 정체되어 있는 현실 등 남모르는 흠도 많다.
⑤ 수행환경 보존위해 단체 결성
환경문제 해법론은 크게 환경주의와 생태주의로 나누어진다. 환경주의는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크게 바꾸지 않고 과학기술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간 중심적인 성격이 강하고, 생태주의는 지구상의 만 생명을 하나로 보고 인간의 탐욕을 성찰하고 이를 실천하자는 입장이다.
우리나라의 초기 환경교육과 운동은 환경주의적 경향이 짙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 생태주의가 소개되기 시작했다. 1994년 9월, 필자는 중등학교 환경생물교사와 환경운동가들을 모아 ‘생명’을 바탕으로 하고, ‘탐구적 생태이해’와 ‘자발적 시민참여’를 우선시하는 두레생태기행을 창립했다. 두레에서는 매월 1~2차례 회원들이 산과 강으로 탐사를 나가 새로운 시각으로 자연을 보고 배웠다. 당시 언론들은 생태 중심의 새로운 환경교육과 운동을 다투어 보도해줬다.
두레 창립 후 ‘생태운동’ 적극 동참
사찰생태硏 설립…모니터링 사업도
그 무렵 미국으로부터 ‘생태관광’ 개념이 도입되었는데, 마침 한국유네스코 주최 토론회가 있어서 생태기행과 생태관광이 함께 비교되었다. 당시 환경단체들은 상업적 생태관광보다 체험학습 형태의 생태기행을 지지하여 지금도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두레를 거쳐 간 이들이 각 지역에서 생태교육을 맡아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1999년도와 2000년도에는 올바른 생태교육을 위해 전국모임을 갖고 ‘생태기행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전국에 배포했다.
창립 후 두레는 동강살리기 운동, 난지도 골프장 반대운동, 새만금간척 반대운동 등 환경이슈에 동참하는 한편 생태교육의 확산을 위해 <생태기행>, <서울의 생태>, <생태탐방 가이드북> 등을 펴내 생태운동의 지평을 넓혔다.
그즈음 불교계에도 공부모임이 만들어졌다. 서울 종로경찰서 옆 작은 공부방에서 필자를 비롯하여 박광서 교수, 불교환경교육원(현 에코붓다) 유정길 거사 등이 매주 모여 스터디를 했다. 당시 교계 환경단체는 공해추방운동불교인모임과 불교환경교육원이 있었다. 두레는 이들 단체와 함께 청정국토 한마당 행사를 열기도 했다. 1990년 중반, 가야산 해인골프장 반대운동을 시작으로 천성산 지키기 운동, 지리산댐 백지화운동 등 크고 작은 환경이슈들이 터졌다. 이에 사찰 수행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는 보다 전문적인 단체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껴서 2002년도에 사찰생태연구소를 설립해 두레의 곁방살이를 시작했다.
우선 첫 사업으로 자비를 들여 전국 108개 사찰 생태모니터링을 시작했다. 7년에 걸친 모니터링 결과를 요약해 보고서로 정리해서 조계종 총무원에 제출했다. 월정사를 비롯한 주요 사찰 생태조사와 구룡사 황장목 관리방안 연구 등 연구 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수시로 사찰의 생활환경에 대한 모니터링에 나섰다.
한편, 조계종 본.말사주지교육, 사찰신도회, 불교단체 등에 나가 생태운동을 전하고, 한강유역청의 협조를 얻어 불자 명예환경감시단 교육을 실시했다. 총무원 후원으로 사찰생태문화 지킴이를 양성하고 교보생명재단 후원으로 사찰생태문화 안내자 재교육을 실시했다. 앞서 총무원의 청원으로 <방생지침서>도 집필하고, 불교단체와 함께 한강에 나가 재첩 생태방생을 직접 시현하기도 했다.
연구소 창립 초기 서울대 이도원 교수, 산림과학원 신준환 박사 등등과 함께 전통생태학 모임을 만들어 세미나를 시작했는데 마침 서울에서 세계생태학대회가 열려서 외국 학자들에게 우리 민속과 불교전통에 나타난 생태주의를 소개하는 기회를 얻었다. 폐암 투병 중에도 틈틈이 대학교, 지자체, 시민단체, 사찰 등에 나가서 ‘불교와 전통생태’ 강의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⑥ 환경위원회 구성해 위기에 대응
정부와 지자체의 개발정책으로 사찰환경이 날로 위기에 처하자 교계 안팎에서 이에 대비한 환경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화답하여 조계종에서 2001년 3월, 총무원장 직속기구로 환경위원회를 구성했다. 보선.현고.현응스님, 이병인 교수, 유정길 거사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제11교구본사 불국사 주지 성타스님이 초대위원장, 필자가 부위원장 소임을 맡았다. 현재 제4기 환경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으며, 각 교구본사 환경위원회도 속속 구성되고 있다.
환경의제21 제정·환경 교재 발간 등
사찰 환경 보호 위해 다각적인 노력
그동안 환경위원회는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수행환경 훼손 문제와 오.폐수 등 사찰 내 생활환경문제에 대한 진단과 조사, 사찰림 보호 및 활용방안 연구, ‘불교환경의제 21’ 제정 및 선포.실천, <사찰환경침해사례집>과 불교환경교재인 <불교의 지혜와 환경> 발간 등 많은 일을 해왔다.
1992년 브라질 리우회의에서 세계 170여 개국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유엔환경개발회의가 열렸다. 회의 결과 ‘지속가능한 개발(ESSD)’을 기본이념으로 한 의제21(Agenda 21)을 채택했다. 이어 나라마다 ‘국가의제 21’이 제정되고 지방마다 ‘지방의제 21’이 마련되었다. 필자는 서울특별시 ‘서울의제 21’ 제정에 참여했는데, 국어교사 경력이 있어서 최종문안 수정까지 맡았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2004년도에 현응스님, 이병인 교수, 유정길 대표 등과 함께 ‘불교환경의제 21’ 제정을 발의하였다. 그 후 3년여에 걸친 연구와 토론 끝에 ‘불교환경의제 21’을 완성해 2006년 9월 총무원장 스님이 선포하였다.
환경의제21은 사부대중의 구체적인 환경실천약속이다. 이에 따라서 2007년도부터 각 사찰과 사부대중이 실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널리 홍보하고 진행했다. 이와 병행하여 수경스님이 이끄는 불교환경연대 공동대표를 맡아 ‘환경 오계’를 주창하는 세미나도 가졌다.
그동안 환경운동을 하면서 관(官)하고는 항상 거리를 두어왔다. 그러나 사찰생태와 수행환경 보전을 위해 지난해에 기꺼이 환경부 국립공원 위원 소임을 맡았다. 최근 환경부가 일방적으로 국립공원 구역조정안을 내놓으면서 이래저래 바쁘게 나다니고 있다.
우리 사회문화의 변화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이 ‘생태문화’의 새로운 등장이다. 생태도시, 생태공원, 생태아파트, 숲해설가, 생태사찰, 사찰음식, 산사음악회 등 모두가 전에 없이 나타난 새로운 문화현상들이다. 필자는 최근 사단법인 숲해설가협회 대표를 맡아 지도자와 시민들을 대상으로 ‘불교와 숲’ ‘사찰생태문화’ 강의를 다니는데, 신선하고 새로운 주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근래에는 사찰도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생태문화 체험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불교계에서 아직 문화해설가나 생태해설가를 키워낸 적이 없다. 관람료만 받고 탐방객들에게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국민들의 불만도 있다. 이에 총무원과 의논하여 사찰생태문화해설가 양성과 가이드북 발간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은 사부대중의 인식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간 불교계에서 환경운동을 해오면서 못 이룬 원력 가운데 하나가 불교수목원 설립이다. 불교와 관련된 식물과 우리나라 고유 식물을 주제로 한 세계적 불교수목원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멸종위기종의 보존과 다양성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사찰 숲 복원과 식생조경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사찰 휴경지를 생태적으로 활용하여 불교의 대사회적 환경이미지를 쇄신시키면서 경제가치도 창출할 수 있다.
⑦ “숲은 그곳에 사는 사람을 닮는다”
부처님의 일생은 항상 숲과 함께 했다. 환경시대에 불교가 대안으로 주목을 받는 것도 불교가 숲의 종교, 즉 생태적 종교이기 때문이다. 1600년 한국불교도 숲을 떠나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 시대나 사찰 숲은 우리 산림의 지표였고, 지금도 수행자들은 산 숲에 머물며 정진하고 있다.
그러나 근래 들어와 정부와 지자체의 개발지상주의와 사찰 내부의 세속적 욕망으로 인해 사찰의 자연환경이 많이 훼손되었다. 수행환경과 직결되어 있는 사찰의 생태보전을 위해 2002년도에 사찰생태연구소를 설립하고 전국의 108개 주요 사찰에 대한 생태모니터링(Eco monitoring)에 나섰다.
7년간 사찰생태 기록, ‘산사의 숲’ 출간
언론과 달리 불교계 관심 부족 아쉬워
생태모니터링이란 우리 시대의 사찰 숲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거기에 어떤 동식물들이 서식 분포하고 있는지를 총체적으로 조사하는 일이다. 이 작업이 선행되어야만 비로소 사찰생태를 보전하고 또 후손들에게 우리 시대 사찰 숲의 가치와 그 실상을 전해줄 수가 있다.
7년 동안, 북으로는 강원도 고성 금강산 건봉사부터 남으로는 해남 땅끝의 미황사와 바다 건너 한라산 관음사까지, 해발 1244m 설악산 봉정암부터 바다 위에 뜬 서산 간월암까지, 산중의 절에서 서울 도심의 봉은사에 이르기까지 두루 찾아다니며 기록했다.
이 작업에는 식물, 버섯이끼, 곤충, 조류, 어류, 포유류 등을 전공한 각 분야 교수와 박사 그리고 숲 해설가 등이 동참하였으나 혼자 조사를 다닌 적이 더 많았다. 그것은 서로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던 점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줄 거마비가 주머니에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간 기억에 남는 동·식물은 울진 불영사의 금강송, 덕유산 백련사의 구상나무, 설악산 봉정암의 분비나무, 정선 정암사의 산작약, 봉화 청량사의 연화바위솔, 오대산 월정사의 긴점박이올빼미, 영월 법흥사의 까막딱다구리, 양양 낙산사의 바다직박구리, 영동 반야사 산중의 재첩조개 등이다.
조사기간 동안 사찰 숲을 다니면서 얻은 결론은 절로 이루어진 숲이든 사람이 심어 가꾼 숲이든, 숲은 거기에 사는 사람을 닮는다는 사실이었다. 도시의 숲은 시민들을 닮고, 사찰 숲은 그 절에 사는 스님들을 닮는다는 사실이었다.
108사찰 생태모니터링 결과물은 약 7000매의 원고와 약 5000매의 사진이었다. 조사기간 동안 틈틈이 교계 신문에 연재하고, 회향 후에는 500쪽 분량으로 요약한 보고서를 총무원에 제출했다. 작년 11월, 그동안 수고했다면서 총무원장 지관스님이 불러 감사패를 주셨다.
회향 후 몇몇 출판사들이 연락을 해왔다. 108개 사찰 가운데 상품성이 뛰어난 유명 사찰만 골라서 책을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안 될 말이었다. 다행히 자연생태 전문출판사가 나타나 108개 사찰생태를 10권의 <산사의 숲> 시리즈로 담아서 출판하게 되었다. <산사의 숲> 시리즈는 여느 사찰 답사기와는 다르다. 우리 사찰의 자연생태(동식물)를 기록한 최초의 책이다.
언론의 관심과는 달리 이 책에 대한 불교계의 관심은 아직까지 별로이다. 사찰 주변에 무슨 식물이 있고, 무슨 동물이 서식하고 이렇게 사찰의 생태 비밀을 낱낱이 드러내놓으면 앞으로 건축불사를 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일부 스님들의 불만이 있는 모양이다.
사찰 생태와 수행환경 보전을 위해 낸 책이 오히려 외면당하는 현실, 불교계에서 생태운동은 이렇게도 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의 기록적인 가치는 당대가 아니라 다음세대에 드러날 것임을 확신한다.
⑧ 언론·환경운동 함께한 이들 감사
불교시민운동에 뛰어든 지가 올해로 20년, 그동안 필자의 불교운동 주제는 언론과 환경이었다.
교계의 언론운동은 진관스님의 언론주권운동(하드)과 필자의 언론모니터운동(소프트)인데, 언론모니터운동은 방송과 통신의 경계가 없어진 융합시대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수용자 주권과 불교의 권익을 위해 중단할 수 없는 일이다. 다다익선이라고 했다. 교계 메이저 단체나 대형사찰이 이 운동에 동참해야 하고, 종단의 인적·물적 투자도 필요하다.
20년간 매진 불구 아직 할 일 많아
사부대중의 낮은 참여 아쉬움 남아
교계의 환경운동은 국민의 주목 아래 2000년대를 전후해 더욱 활발하게 전개됐다. 수경.도법.지율스님 등이 생태주의에 바탕을 두고 헌신적으로 이끌고 있지만, 정작 사부대중의 참여도는 낮다. 특히 승가의 대세는 아직도 ‘성찰적 환경보전’보다는 ‘편의적 개발불사’에 친숙해져 있음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심지어는 노골적으로 환경 또는 생태운동을 폄하하는 일도 종종 있다.
언론과 환경 활동 외에 1991년도에 ‘두레문화기행’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시민들과 함께 전국의 역사유적과 문화유산을 답사 다니면서 답사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 경험을 토대로 7년 전부터 서울시 문화유산해설사들을 키워내고 있다. 특히 사찰답사를 통해 시민에게 불교 문화재들을 소개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전해온 것은 또 다른 포교 보람이었다.
세상은 보수니 진보니, 우파니 좌파니 하고 편가르기를 좋아한다. 필자는 그동안 편가르기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돛대도 없이 배를 띄워 세상을 어지럽히거나 무리에 부화뇌동하여 함부로 배에 올라타는 일을 경계해왔다. 어떤 일도 바른 견해가 서지 않으면 가볍게 나서서 업을 짓지 않았다. 그것은 나름대로의 생활신조이기도 하지만, 태생적으로 통이 작고 소심한 탓도 있을 터이다.
필자는 승가와 재가 양쪽을 두루 경험했다. 불교계에 몸담으면서 느낀 점 가운데 하나가 승가와 재가의 올바른 관계정립이 시급하다는 점이다. 승가는 재가지식층의 비판적 입장에 대해 감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다. 재가지식층 또한 승가지도층에 대해 냉소적 불신을 갖고 있다. 두 수레바퀴가 한축을 이루지 못하고 겉돌고 있어서 불교 발전에 적지 않은 장애가 되고 있다. 한때 출가한 적이 있었으나 공부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안국선원을 통해 선을 접하고 보리수선원을 통해 위빠사나를 만나 뒤늦게 경계를 맛보고 나름대로 정진하고 있다. 1988년부터 1000 사찰 순례를 시작하여 이제 곧 회향을 앞두고 있다.
2003년 새만금간척 반대시위 갔다가 감기가 들어 치료받던 중에 우연히 폐에 종양이 발견되었다. 지금껏 용케 버틴 것은 오로지 불보살의 가피이다. 전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공식석상에서 “자네 병 내가 갖고 가겠네”라고 하시더니 몇 달 후 그만 열반하시고 말았다. 그리고 낙산사 정념스님, 화계사 수경스님, 실상화 보살님의 각별한 격려가 투병에 큰 힘이 되었다.
지난 20년 동안 알게 모르게 어리석은 결행도 많았고, 실언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2003년도 불이상 상금으로 불교환경상을 만들겠다고 공언해놓고 실천하지 못했다. 함께할 환경상 후원자를 결국 찾지 못하고 나중에 그 돈을 치료비에 보태쓰고 말았다. 이 점 매우 송구스럽다.
외롭고 힘든 불교운동을 도반처럼 함께 해준 조채희 국장과 4개 단체 임원들에게 감사하고, 승속을 넘나들며 소중한 인연을 맺어준 주예·무상·관우 세 분 스님에게 경배를 올리며 연재를 마친다. 〈끝〉
▣ 김재일 / 두레생태기행 회장ㆍ사단법인 보리방송모니터회 이사장ㆍ사찰생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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